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마음이 시큰했던 러시안 시리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3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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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일이다. 연주장에 오면 CD가 듣고 싶어진다. 아티스트의 연주가 마음에 들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더 묘한 일은, 집에서 CD를 듣고 있자면 이번엔 공연장 생각이 저 밑바닥부터 울컥울컥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김재영의 프로코피예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C장조 op.56’은 꽤 흥미로운 곡이었다. 제목 그대로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무대에 올라 대화를 나누듯 네 개의 짧은 악장을 이어간다.

실은 ‘대화’라기보다는 ‘논쟁’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세상을 구원할 듯한 거대담론이 있는가 하면 사내들끼리의 뒷방 음담패설처럼 천박해 보이는 대화도 있다.

김재영의 바이올린을 느긋하게 따라가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권혁주의 바이올린이 막판에 버럭한다. 요즘 핫하게 급부상하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의 멤버이기도 한 김재영은 기본적으로 단아하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소리를 가졌다. 뾰족한 펜촉으로 종이 위에 사각사각 쓰는 질감이랄까. 휘파람 소리를 마치 비명처럼 길게 뽑아내는 재주는 몇 번을 들어도 놀랍다.

금호아트홀의 2015 기획시리즈는 ‘러시안 시리즈’다. 금호아시아나솔리스츠가 2일 개막연주를 했다. 금호영재콘서트,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등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젊은 명장들이다.

두 번째 곡은 안톤 아렌스키의 ‘피아노삼중주 제1번 D단조’. 김재영이 다시 바이올린을 잡고 이정란이 첼로를, 김다솔이 피아노를 맡았다.

한 마디로 ‘미친 듯한’ 연주다. 바이올린이 “옛날이야기 하나 들어볼래”하고 운을 띄우면, 첼로와 피아노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이야기를 조각조각 내버린 뒤 다시 재구성해 놓는 식의 연주다.
3악장은 세 사람이 부르는 절창.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얻어맞은 듯 시큰시큰했다.

인터미션 후에 연주된 이날 공연의 마지막 곡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와 현을 위한 오중주 G단조’였다. 오중주이니 당연히 다섯 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오른다. 권혁주와 김재영이 바이올린, 이한나가 비올라, 김민지가 첼로를 맡았다. 피아노 앞에는 김다솔 대신 손열음이 앉았다.

출발의 표정이 꽤 심각한 곡이다.

그럼에도 권혁주란 연주가는 뭘 연주해도 편해 보인다. 그의 현은 울부짖을지언정, 그의 표정은 느긋하기만 하다. 가끔은 그 표정이 얄미울 정도다.

손열음은 강렬한 타건을 통해 피아노에서 찌그러진 종소리를 만들어냈다. 피아노가 타악기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다.

수줍게 굴던 비올라가 2악장에서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한나의 비올라는 힘이 좋다. 사람으로 치면 딕션이 뛰어난 소리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처럼 시원시원하게 공간을 뚫고 나온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악장은 역시 3악장이 아닐까. 다섯 명의 연주자가 모두 으¤으¤ 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귀 못지않게 눈을 즐겁게 해준다.

4악장은 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뭔가 사연이 있는 폐가의 분위기다. 그것도 황량하기 그지없는 들판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집이다.

그러다가 5악장에서는 표정이 싹 바뀌어 씩씩하게 행진한다. 연주자들도 ‘실은 우리도 4악장은 힘들었어’하는 얼굴이다.

1941년 쇼스타코비치에게 스탈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푸가 형식의 2악장이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안 시리즈’의 다음 바통은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이어받는다. 4월 16일, 역시 목요일이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아빈을 연주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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